마지막 순간 그녀가 그리워한 건 여행도 성공도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마지막 글에서 가장 그리워한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특별한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그녀가 그리워한 것은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 샬롯 키틀리가 남긴 말, 그리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대하여

 "눈물 나도록 살아라."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남긴 말입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아름다운 말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그 말의 진짜 무게를 알게 된 건 샬롯 키틀리라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만나고 나서였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샬롯 키틀리였습니다

영국의 극작가 샬롯 키틀리는 2012년, 대장암 4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나이 서른네 살. 두 아이의 엄마였고,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였고, 글을 쓰는 것을 평생의 일로 삼았던 사람이었습니다.

6개월 시한부 판정이었습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39회의 항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서른아홉 번. 한 번 한 번이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지, 그 숫자만으로도 가늠이 됩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6개월을 넘겼습니다. 1년을 넘겼습니다. 판정보다 22개월을 더 살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서른여섯의 나이에, 두 아이를 곁에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쓴 글이 있었습니다. 업로드하지 못하고 남겨둔 글이었습니다. 남편 리처드가 그 글을 대신 세상에 내보냈습니다. 생전에 그녀가 에세이를 기고하던 허핑턴포스트 UK에.

그 글이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그녀가 원했던 것

살고 싶은 나날이 이렇게 많은데, 저한테는 허락하지 않네요.

이 한 문장을 읽는 순간, 숨이 잠깐 멎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살고 싶은 나날. 그 말이 참 묵직하게 가슴에 박혔습니다.

그녀가 원하는 나날들이 무엇이었는지, 그 글 속에 조각조각 담겨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늙어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거창한 꿈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것을 바란 게 아니었습니다.

그냥,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생에서 초등학생이 되고,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남편의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하나씩 늘어가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자신도 그와 함께 천천히 나이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 소망이 너무도 평범해서, 오히려 더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소리 지르던 그 날들이… 모두 행복이었습니다"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일어나라고, 서두르라고, 이 닦으라고 소리 지르던 그 나날들이… 모두 행복이더군요."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소리 지르던 아침들. 아이가 늑장을 부릴 때의 답답함. 학교 버스 시간에 쫓기며 현관을 뛰쳐나가던 소란스러운 하루의 시작.

우리는 그 시간을 '지겨운 일상'이라고 부릅니다. 빨리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는 시간. 어서 아이들이 커서 이런 소란이 없어졌으면 하는 시간.

그런데 그 시간이,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소망이었습니다.

그 소란스러운 아침 식탁이 다시 한번 주어지기를. 아이의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들리기를. 늦었다고 아이를 재촉하는 자신이 다시 한번 될 수 있기를.

살아 있다는 것의 증거가 사실은 그 평범하고 소란스럽고 지겨운 것들이었는데, 우리는 너무 자주 그 사실을 잊고 삽니다.


보너스처럼 얻은 시간들

6개월이라는 시간을 선고받은 그녀가 22개월을 더 살았습니다.

그녀는 그 시간을 '보너스'라고 불렀습니다.

참 아름다운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원망스러울 수도 있었습니다. '왜 나는 이것밖에 없나'라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간을 선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보너스 덕분에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에 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 이가 빠진 기념으로 자전거를 사줄 수 있었습니다. 30대 중반이 아닌 후반까지, 서른여섯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했다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들의 잃어버린 레고를 찾아줄 수 없다고. 딸의 머리를 땋아줄 수 없다고.

얼마나 작은 일들입니까. 레고를 찾는 것, 머리를 땋는 것.

그런데 그 작은 일들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큰 슬픔이었습니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커피 두 잔을 내렸다가 한 잔은 마실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 슬퍼할 남편을 걱정했습니다.

자신이 없어진 자리를 가장 먼저 알아챌 사람이 남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질지 알았기 때문에.

그 걱정이 너무 아름다우면서도, 너무 슬펐습니다.


중년의 복부 비만도 한번 가져봤으면

그녀의 글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문장이 있습니다.

"중년의 복부 비만, 늘어나는 허리둘레도 한번 가져봤으면 좋겠어요. 하얗게 센 머리카락도 한번 뽑아봤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살아남았다는 뜻이잖아요."

이 문장을 읽고 나서, 아마 많은 분들이 거울을 한번 다시 보셨을 겁니다.

늘어난 허리둘레를 보며 한숨 쉬었을 것입니다. 흰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인상을 찌푸렸을 것입니다. 거울 속의 나이 든 얼굴이 낯설고 반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것을 가져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살아남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세월을 겪었다는 흔적이기 때문에. 그 흔적들을 몸에 새길 만큼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뜻이기 때문에.

우리가 부끄러워하는 것, 지우고 싶어하는 것, 없애려고 애쓰는 것들이 사실은 살아있다는 가장 아름다운 증거들이었습니다.

나이 드는 것이 두렵습니까. 몸이 변해가는 것이 싫습니까.

샬롯 키틀리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그 두려움과 싫음이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나이 들 수 있다는 것. 몸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를.


눈물 나도록 살아간다는 것

샬롯 키틀리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영국 대장암 협회에서는 그녀를 기억하기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름은 '샬롯의 희망의 별'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녀의 글에서 알베르 카뮈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눈물 나도록 살아라.'

카뮈의 그 말이 샬롯의 이야기를 통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눈물 나도록 산다는 것은 매일 극적인 감동을 느끼며 사는 게 아닙니다. 매 순간 의미심장한 깨달음을 얻으며 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아침에 아이가 칭얼대도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걸 마음 한켠에 두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 지겨운 출근길에도 '지금 내가 어딘가로 갈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잊지 않는 것. 식탁에 함께 앉아 밥을 먹는 평범한 저녁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행운이 겹친 순간인지를 가끔은 떠올리는 것.

그게 눈물 나도록 사는 삶입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기, 이 평범한 하루를 조금 더 선명하게 느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오늘이라는 하루의 의미

오늘이라는 하루는 어제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던 내일입니다.

이 문장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무겁다고 느껴도 괜찮습니다. 그게 맞는 감각입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뜬 것. 숨을 쉬고 있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 밥을 먹을 수 있는 것. 피곤해도 잠들 수 있는 것.

그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으로 간절히 바라던 하루의 내용이었습니다.

샬롯 키틀리는 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디 삶을 즐기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두 손으로 삶을 꼭 붙드시기 바랍니다."

두 손으로 삶을 꼭 붙드는 것.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습니다.

우리는 가끔 삶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삶을 붙들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흘려보냅니다. 오늘도 그냥 지나가고, 내일도 그냥 지나가고,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참 많은 시간이 그냥 흘러가 있습니다.

두 손으로 삶을 꼭 붙든다는 것은 완벽하게 사는 게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을 의식하며 사는 겁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을 의식하는 것. 지금 먹고 있는 밥의 온기를 느끼는 것. 지금 들리는 소리에 잠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게 두 손으로 삶을 붙드는 방법입니다.


오늘 이 평범한 하루가, 이미 눈물 나도록 아름답습니다

먼 훗날, 우리는 비로소 깨달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 평범한 하루가 이미 눈물 나도록 아름다웠다는 사실을.

지겨웠던 출근길이, 소란스러웠던 아침 식탁이, 별것도 아닌 일로 짜증 냈던 그 순간들이, 아무 말 없이 나란히 앉아 TV를 보던 저녁이,

다 아름다웠다는 것을.

그것들이 모여 '내 인생'이 되었다는 것을.

샬롯 키틀리는 36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마지막 말들은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눈물 나도록 살아라.

오늘 하루, 조금 더 선명하게. 오늘 곁에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다정하게. 오늘 주어진 이 평범함에, 조금 더 감사하게.

그렇게, 눈물 나도록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인생 대하 에세이] 가슴 아픈 이별과 시련 속에서 발견한 내면의 빛과 위로

[인생 에세이] 멈추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늙어가는 농부의 아름다운 지혜

[인생 대하 에세이] 내리막길이 아닙니다, 가장 눈부신 열매를 맺는 축복의 계절입니다